티스토리 뷰
세종대왕과 가족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왕의 호칭은 모두 묘호이다. 묘호라는 것은 임금이 죽은 사후에 붙여주는 것으로 세종은 나라를 안정시키고 태평성대를 이루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른 임금과 달리 유일하게 우리는 세종대왕이라고 해서 아주 높여서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세종대왕이 남긴 여러 가지 업적 중에 가장 최고의 업적은 한글 창제이다.
만일 한글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계속해서 한자를 사용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세종대왕은 태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인 양녕대군이 이미 세자로 책봉되어 있고 위로 효령대군이 있어 왕위 계승 서열에서는 많이 밀려 있었다.
하지만 두 명의 형들을 제치고 조선의 4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세종의 아버지 태종 이방원은 조선의 건국에 깊이 관여를 했지만 아버지 이성계와 정도전에 의해서 철저하게 소외되었다.
정도전은 조선을 신하의 나라로 만들고 싶었다. 왕이 항상 똑똑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없으니 신하들에 의해서 나라가 운영된다면 이상적인 운영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조선을 건국했다.
누군가 말하길 조선은 이성계의 힘을 빌려 정도전이 건국한 나라라는 말이 있다. 정도전은 단지 건국에 관여를 한 것이 아니고 국가의 체계를 만들고 궁궐을 건설하는 등 조선 건국과 체계를 혼자 다잡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태조 다음의 왕은 정도전의 이상을 잘 실현할 수 있는 이방원의 이복동생으로 이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방원의 생각을 달랐다. 피로서 건국한 왕을 정도전 같은 신하들에 의해서 운영되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두 번의 난을 통해서 정도전과 이복동생들 모두를 제거했다.
태종 이방원은 조선 3대 왕에 즉위하고 나서도 왕권에 위협이 되는 모든 것들을 제거했다. 자신과 혁명을 같이한 처남들도 제거할 정도로 잔인한 면모를 보인 이유는 안정적인 왕권만이 국가를 안정시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 왕은 정통성을 확보한 장남에게 물려주려고 했다.
태종의 장남인 양녕대군은 이러한 아버지의 기대에 크게 벗어났다. 양녕대군은 같가지 기행을 일삼아서 결국 폐세자 되고 둘째가 아닌 막대 충녕대군이 왕위를 이어받았다. 그가 바로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은 조선시대 왕 중에서 자식을 많이 낳을 것으로 유명하다.
세종대왕의 가족들을 보면 후궁 포함해서 부인만 12명이고 아들 18명 딸 7명을 두었다. 아마 가장 많은 가족을 가진 임금일 것이다. 세종대왕의 아들들은 모두 총명해서 아버지 세종을 도와서 많은 일들을 했다. 특히 장남 문종은 한글 창제에 깊이 참여를 했다.
세종 시절에는 한글 창제 이외에도 측우기로 대표되는 많은 과학적 발전이 있었다. 특히 천문의 연구는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달력을 제작하게 되었다. 예로부터 천문과 달력은 황제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서 중국에서 우리에게 매년 달력을 보내 주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24절기는 중국 북경 기준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와 조금 안 맞는다. 그래서 세종대왕은 독자적인 달력을 가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중국은 이러한 시도를 무척 싫어했다. 세종대왕의 가족들 특히 자식 중에는 문종과 나중에 세조가 되는 수양대군 그리고 안평대군, 금성대군 등 한 명 한 명 모두 왕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세종이 생존해 있을 때에는 이러한 능력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 때로는 국가에 커다란 도움이 되지만 문제는 세종이 죽고 문종이 즉위해서 발생한다. 문종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세자 시절 대리청정을 하는 등 정치적 역량이 풍부했지만 너무 나약했다.
이러한 문종의 병약함은 동생들에게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특히 둘째 수양대군과 셋째 안평대군은 모두 왕이 되고 싶어 했다. 문종은 이러한 동생들의 흑심을 알고 있었기에 세자가 왕위에 오른 다음 안정적인 왕권을 위해서 김종서 등 힘 있는 신하들을 고명대신으로 임명한다.
문종의 이러한 조치는 본인이 죽은 다음 아들인 단종이 위협받지 않는 상태에서 정치를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은 이러한 문종의 기대를 무참히 부셔 버린다.
단종이 즉위하고 수양대군은 야심을 노골화되는데 김종서를 비롯한 고명대신들은 이러한 수양대군의 야심을 꺾기에는 부족했다.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를 비롯한 고명대신 모두를 제거한다.
그리고 조카인 단종마저 유배 보내서 사사한다, 그리고 본인이 왕이 되어서 즉위를 하는데 이가 바로 세조이다. 세조는 조카와 김종서만 제거한 것이 아니고 동생들도 귀향 보내거나 사사한다.
안평대군과 금성대군도 사사된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키기 전에 상의했던 인물이 세종에게 세자 자리를 넘겨준 양녕대군이다. 양녕대군은 자신을 대신해서 왕이 된 세종대왕에게 소심한 복수를 한 것이다. 세종대왕 아버지 태종은 왕권에 문제가 될 만한 모든 세력을 제거해 주었다.
그래서 본인은 통치만 하면 되었지만 너무나 뛰어난 자식들을 가진 게 문제이다. 결국 아버지도 형제를 죽이는 골육상쟁을 했고 자신의 아들들도 왕의 자리를 놓고 서로를 죽였다. 형인 양녕대군은 이러한 것을 지켜보면서 만류하지 않고 오히려 부추겼다. 권력은 아마도 나누지 못하는 것인가 보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적으로 가족들 간의 피 튀기는 혈투를 벌이는 이유가 권력이다. 세종대왕과 가족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든다. 문종이 조금만 더 오래 살아서 단종이 성년이 된 다음에 왕위를 물려주었다면 가족 간의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