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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만든 최초의 달력,칠정산
세종 때 만든 칠정산은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만든 최초의 달력이다. 칠정산 이전에도 달력은 만들어졌고 사용되었지만 모두 중국의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예부터 천문은 일반 백성이 접근하지 못하는 분야였다. 하늘을 알고 시간을 아는 것은 신성한 것으로 여겨져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절대 권력자가 탄력을 만들어서 배포를 하면 백성들은 그것을 보고 농사와 생활에 이용했다. 그래서 달력은 황제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 이전에는 중국의 달력을 그대로 사용했다. 문제는 중국과 우리나라가 같은 땅이 아니다 보니 시간과 계절이 일치하지 않았다.
현대에 와서도 사용하고 있는 24절기는 중국 북경 기준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절기가 일치하지 않는다. 이러한 오차를 극복하기 위해 조선 4대 왕 세종대왕은 우리나라 역법을 기준으로 달력을 만들었다.
칠정산 이전의 달력
우리나라에서 달력을 사용하기 시작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고구려에서 당나라 역법을 사용한 기록이 있다.
삼국시대 이후 우리나라는 당나라 역법을 그대로 사용했다. 문제는 역법의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오차가 많아서 시간이 지나면 수정을 해주어야 한다.
가장 많이 사용한 역법은 "선명력"과 "수시력"이다. 두가지 역법은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일본에서도 사용할 정도로 동아시아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용했다.
선명력은 당나라 승려들이 만든 역법인데 일시과 월식에 대한 정확한 계산이 가능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해서 고구려 충선왕까지 사용했다.
우리나라에서는 500년 가까이 사용한 선명력은 정작 중국에서는 문제점이 많아서 약 60년 정도 사용하게 폐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계속 사용된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자체적으로 역법을 만드는 능력이 없었다.
역법의 원리를 알아야 역법을 만들 수 있는데 역법의 원리를 모르고 또한 역법을 바꾼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기존의 모든 시스템을 변경해야 하는 커다란 혼란이 생기는 것이다.
수시력, 선명력이후 우리나라에서 사용한 역법으로 원나라에서 만들어진 역법이다. 고려 충선왕 때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사용되었고 세종대왕이 만든 칠정산이 사용되기 이전까지 사용한 달력이다.
수시력은 선명력에 비해서 정확도가 뛰어났다. 중국에서 만든 역법 중에서 가장 뛰어난 역법으로 일 년을 365.2425로 계산했다.
고려시대 수시력을 기반으로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역법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 수시력을 일부 수정해서 "대통력"을 만들어서 사용했다.
칠정산
조선 세종때 기존에 사용하고 있던 달력에 문제점들이 노출되기 시작했다. 모두 중국 북경을 기준으로 하다 보니 한양을 기준으로 보면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시간이 달랐다.
세종대왕은 한양에 꼭 맞는 달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정흠지, 정초, 정인지에게 새로운 달력을 만들 것을 지시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우리나라가 만든 최초의 탄력 "칠정산"이다.
칠정산은 "내편"과 "외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칠정산 내편은 한양을 기준으로 태양의 움직임을 관찰해서 만들어졌다. 동지와 하지 그리고 낮과 밤이 모두 한양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칠정산 외편은 중국 "회회력법"을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수정 보완한 것이다. 회 회력 법은 중국 역법이 아니고 아랍의 역법이다.
칠정산은 효종 때까지 약 200년간 사용된 우리나라 역법이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들어 중국의 문자에서 우리나라 백성을 해방시켜주고 칠정산을 만들어 달력에서도 해방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