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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초의 통일왕국 황제 _ 진시황제
중국 역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진시황제이다. 중국 최초의 통일왕국을 건설했고 태어나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왕이다.
탄생에서 즉위까지
진시황제 탄생과 즉위 과정은 모두 여불위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진시황의 진짜 아버지가 여불위라는 이야기가 지배적이다.
그렇게 추측하는 이유는 진시황이 어린 나이에 즉위를 했을 때 여불위는 최고 권력자이어서 얼마든지 진시황을 폐위시키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지만 그러하지 않았다.
반대로 진시황제가 절대왕권을 행사할 때 여불위를 죽일 수 있었지만 면직시키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여불위가 진시황의 생부라고 사람들이 추측한다.
진나라가 강성하기 전 진나라 왕자 자초는 조나라에 볼모로 보내졌다. 이때 여불위는 자초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서 자신의 아이를 가진 애첩을 자초에게 보냈다.
여불위는 자초가 진나라 왕이 될 수 있게 공작을 펼쳤고 결국 자초는 진나라 왕이 되었다. 자초는 장양 왕으로 즉위했고 아들인 영정(진시황제)은 태자가 된다.
장양 왕이 죽자 영정이 진나라 31대 국왕으로 즉위를 한다. 이때 나이가 13세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어머니 조 태후와 여불위가 국가 운영의 모든 것을 하게 된다.
중국 통일과 황제 즉위
어머니 조태후와조 태후와 여불위가 국정을 장악하고 있는 사이 진나라는 내부적인 반란이 끊이지 않았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여불위가 조 태후와 연인 관계인 것이 발각되는 것이 두려워 조 태후에게 노애라는 남자를 소개해준다.
조 태후는 노애 사이에 아이가 생기자 조 태후는 그 아이들 왕으로 만들기 위해 반란을 계획했다. 진시황이 이러한 반란을 감지하고 모두 숙청시키면서 친정체제로 들어간다.
진시황의 직접 통치가 이루어지면서 본격적인 통일작업을 실시한다. 가장 약한 나라부터 멸망시키는 전략을 실시하는데 연나라에서 항복 사신을 보내다.
연나라 사신인 형가는 진시황제를 암살하려고 했으나 실패한다. 암살 사건 이후 진시황은 다른 나라 사람들을 모두 쫓아내는 정책을 발표하는데 이러한 정책이 잘못됐다고 이사가 올린 상소문이 명문으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전국 7웅중에 가장 강력한 초나라를 멸망시키고 마지막 남은 제나라의 항복을 받아 내면서 진나라는 마침 중국을 통일한다. 최초의 통일된 왕국이 진나라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은 왕이라는 칭호가 마음에 들지 않아 새로운 칭호를 신하들에게 만들라고 한다. 그때 만들어진 칭호가 황제이다. 진시황은 자신이 처음으로 황제를 사용하니 시황제라고 부르라고 한다.
진나라의 처음 황제가 진시황제이다. 진시황은 자신의 아들은 이세 황제, 삼세 황제 이런 식으로 진나라가 영원이 존재하는 나라이길 바랬다.
불로장생 꿈과 진시황제의 죽음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제는 영생을 원했다. 그래서 전국에 걸쳐서 방사와 의사들에게 불로장생의 약을 받치라고 했다. 이때 우리가 아는 서복이 등장한다.
서복은 진시황제에게 봉래산에 가서 약을 구해 오겠다고 하면서 삼천 명의 소년소녀를 데리고 떠난 후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나라와 일본에는 서복에 대한 전설이 깃든 장소가 있다.
진시황제는 생전에 전국을 순회했는데 마지막 죽음도 전국 순회 중에 마차 안에서 죽었다(당시 50세였다). 진시황제는 죽기 전에 맏아들 부소에게 왕을 넘겨주었다.
하지만 환관 조고와 승상 이사는 부소가 왕이 되면 자신들에게 불리할 것을 염려해서 유언장을 고친다. 부소에게는 자결을 명령하고 막내아들 호해가 왕이 되게끔 한다.
호해가 왕이 되자 조고와 이사가 국정을 농단하고 각지에서 반란이 발생하면서 진나라는 멸망한다. 통일된 중국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분열되었고 진시황이 꿈꾼 영원한 제국도 사라졌다.